세계 4대 해전

"세계 4대 해전"

이내원 (이순신 미주교육본부 이사장)

2017년 6월

<세계 4대 해전>이 언제, 누구에 의해 선정 또는 제정되었는지는 그 유래가 불분명하다. 아마도 오랫동안 회자되던 살라미스, 칼레, 트라팔가를 묶는 <세계 3대 해전>에 한산도 해전이 언젠가 한 한국의 걸출한 애국 필자(?)에 의해 슬그머니 추가되어 <세계 4대 해전>으로 거듭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굳이 그 타당성을 찾는다면 칼레와 트라팔가 2대 명해전의 당사국인 해양 대국 영국의 해군 제독 발라드(George Alexander Ballard)가 1921년에 출간한 <일본 정치 역사에 미친 바다의 영향 –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이라는 그의 저술에서 조선의 이순신을 극찬한 기록에 연유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보는 바와 같다.

"세계 4대 해전"

해전명                           연도                  해전국                                         승리제독                                    전술

살라미스          BC 480            아테네 370척: 페르시아 800척    테미스토클래스(아테네) 당파전 등선 백병전

칼레                  1588                 영국: 스페인 무적함대                       드레이크(영국)           화포전
한산도해전     1592                  조선(56척): 일본(73척)                     이순신(조선)                화포전, 학익전법
트라팔가          1805                  영국: 스페인, 프랑스연합                  넬슨(영국)                    횡렬진법

이 <세계 4대 해전>의 공통점은 단연 열세의 피침략국 해군이 예상을 뒤엎고 초강대 침략국 해군을 격파한 데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해전은 기원전 480년 그리스의 작은 도시 국가 아테네의 해군이 동방의 초 강대 페르시아 제국의 해군을 그리스 살라미스 인근의 좁은 해협으로 유인하여 두 배가 넘는 압도적인 다수의 페르시아 연합 함대를 격파한 살라미스 해전이다. 이 해전은 2077년 후인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회심의 부활전 명량대첩과 같이 지리전으로 승부했다는데 그 특징과 공통점이 있다. 이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작은 도시 국가 아테네는 동방 해양 세력의 서진을 차단하여 일약 지중해의 지배자로 부상하게 된다.

영불 해협에서 벌어진 칼레 해전에서는 영국의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걸물 해적 트레이크를 기용하여 당시 해양 대국 스페인의 무적 함대 아르마다를 화포로 제압함으로써 새로운 해양 대국 영국의 부상을 가능케 하였다. 도표의 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칼레 해전은 한산도 해전보다 4년 앞선 동시대의 해전으로 모두 화포전을 구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중해 입구인 스페인 남단 지브랄타 인근 트라팔가 해전의 넬슨은 한산 대첩의 이순신에 비해 213년 후세의 제독으로 영국인의 해신으로 숭앙받고 있으며 이순신과 같이 조국을 구한 최후의 해전 중 함상에서 적탄에 전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인들로서는 한산대첩보다 훨씬 불리한 133척 대 13척, 10 대 1의 절대 열세를 극복한 명량해전은 왜 제외 되었을까? 의문을 가져볼만 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좁은 물길, 거친 물살, 얕은 수심과 수 많은 암초, 이순신의 초인적 리더십으로 이룩한 명량대첩은 재현이 불가능한 불가사의의 비정형 비상해전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아! 아… 이순신! 2,500년 해양 쟁패의 인류역사에도 그에 견줄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