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부 1등작 이수영

"나라와 백성을 구한 불멸의 장군, 이순신"

이수영

깊고 푸른 바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막막한 바다. 그 바다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렸을 때 동네 꼬마들을 이끌며 전쟁놀이를 즐겼던, 씩씩하고 용감한 아이였어요. 아이는 나라를 지키는 장군을 꿈꾸며 의젓한 청년으로 자랐지요. 뒤늦게 벼슬자리에 오른 뒤에는 궂은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해냈어요. 청년은 나라의 바다를 지키는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일본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어요.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빼앗고, 삶의 터전을 끔찍하게 짓밟았지요. 장군은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일본 군대와 맞서 싸웠어요. 단 한번도 지지 않았어요. 적을 물리치는 마지막 싸움터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백성과 나라 걱정만 했어요.

“나는 이 바다에 수많은 부하와 백성을 묻었다. 누구 하나 아깝지 않은 목숨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목숨과 바꾸어 서라도 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자기 목숨보다 백성과 부하의 목숨을 훨씬 소중히 여긴 사람, 옳지 않은 일은 단호히 물리치며 자기 뜻을 굽히지 않은 사람, 왜군과 맞서 싸워 바다를 지켜 내고 나라와 백성을 구한 사람, 우리는 그 사람을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불러요.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장군은 최초 해전인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하여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꼽히는 한산대첩을 비롯하여 장군이 최후에 전사한 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전에서 공을 세웠어요. 한 때 원균의 모함으로 세 번의 파직과 옥중생활을 겪고 두 번의 백의종군이란 시련도 있었지만 정유년 일본이 재 침략하자 복위 되었지요. 이순신 장군은 전략이 탁월하였으며 특히 해전에서의 전략이 뛰어나 학익진법을 비롯, 많은 전투진법을 개발하여, 실전에 적용하여 패전없이 승전을 거둡했습니다. 또 기존 전함 판옥선을 변형하여 거북선을 개발 제조하여 실전에 투입시킴으로써 큰 성과를 거두었어요. 이렇게 이순신장군 한산대첩 등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철저한 준비와 탁월한 전술 그리고 거북선과 화포 등의 뛰어난 무기를 잘 사용했기 때문으로서, 장군은 임진왜란 중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나라와 민족을 왜적으로부터 방어하고 격퇴함으로서 한국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의 한사람으로 역사에 남겨졌습니다. 결국 이순신장군은 16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쟁인 임진왜란, 그 7년간의 전쟁 속에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였어요. 일본군의 침략으로 뿌리째 뽑혀 쓰려지려는 조선 왕조와 죽어가는 백성을 구한 이순신장군의 공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남다르며 훌룡한 인성 리더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국가에는 충성합니다. 그에 난중일기에서는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을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그의 나라의 충성심의 대해서는 대단한 정신으로 왜군을 맞아 국권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23전 23승의 전승을 이끌어 냈습니다.

역사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투시하는 거울이에요.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통해 장수와 전략가가 이룩한 탁월한 전공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대비하는 혁신적인 면모, 관습을 과감히 돌파는 개혁의 의지, 장수들과 함께 합의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만들어내가는 과정 등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볼 수 있어요. 기존의 관습과 타성에 젖지 않고 항상 초유의 위기를 개척해 나간 지도자 이순신 장군. 무한경쟁의 시대의 있어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불패의 신화를 이룩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전략은 오늘날의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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